독서모임.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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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미

 

봄밤 / 안현미

 

 

봄이고 밤이다

목련이 피어오르는 봄밤이다

 

노천까페 가로등처럼

덧니를 지닌 처녀들처럼

노랑 껌의 민트향처럼

모든 가짜 같은

도둑도 고양이도 빨간 장화도

오늘은 모두 봄이다

오늘은 모두 밤이다

 

봄이고 밤이다

마음이 비상착륙하는 봄밤이다

 

활주로의 빨간 등처럼

콧수염을 기른 사내들처럼

눈깔사탕의 불투명처럼

모든 진짜 같은

연두도 분홍도 현기증도

오늘은 모두 비상이다

오늘은 모두 비상이다

 

사랑에 관한 우리는

모두 조금씩 이방인이 있다

그해 봄밤 미친 여자가 뛰어와

그림자를 자신의 것이라 주장했던 것처럼

김소연

 

 

달콤한 / 김소연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대기 속에선 시간마저 녹아 흐르는 같다. 시계가 축축 늘어진 유명한 달리의 그림 속에 빠져 허우적대는 듯한 느낌이랄까. 현실로 돌아가는 출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점점 느낌에 중독되어가고 있다. 시간이 모호해지는 가장 초현실적인 공간이야말로 지금의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일 테니까. 나는 어쩌면 내가 속한 시간에서 벗어나기 위해 곳까지 여행을 떠나왔을 것이다.

하늘은 더없이 파랗고 구름은 아래 세상의 찌는듯한 열기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무심히 흐르고 있다. 얼마나 지났을까. 페티에에서 손목시계를 잃어버린 자연과 본능에 따라 며칠을 보냈다. 태양이 커튼 틈을 비집고 눈을 적시면 눈꺼풀을 열었고, 뱃속에서 진동이 느껴지면 식당을 찾았으며, 바닷물에 노을이 서리면 바에 기어들어가 맥주를 마셨다. 그것이 내가 몸으로 느끼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8월의 태양을 직각으로 흡수한 아스팔트 위에서 트렁크 가방을 의자 삼아 시간째 앉아있으니 아무런 시간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물컹물컹한 속을 헤엄치는 모습이 환각처럼 눈앞에 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