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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인

 

 

믿어야 앞날 / 최지인

 

 

그날을 기억해. 내가 아버지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지. 아버지는 슬펐다. 우린 소리 내어 울었고

 

편지에 엄마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그것을 문틈으로 집어 넣었다.

 

달리는 택시에서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어머니가 나를 껴안았다. 우리는 굴렀다, 아스팔트, 아스팔트. 나는 다치지 않았어. 엄마, 괜찮아?

 

우린 행복했어.

정말?

 

나는 평범한 아이였지, 대소변을 가리진 못했지만,

(계단에서 웃다가 소변을 지리곤 했다, 소변이 나오지 못하도록 성기를 부여잡았지만)

심성은 나쁘지 않았어.

아냐, .

 

복도에 있는 창문으로 아랠보면 풍경들은 나를 빨아들였다. 나는 몸을 기울이고 화단을 보았다. 그때 사라졌다면 나는 화분이 되었을텐데, 고작

사촌의 돈을 뺐었다. 사촌은 멍들었다. 나는 그가 이르지 못하도록 단단히 일러두었다.

키가 나의 사촌아,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

나는 쓸모있는 형이고 싶었는데,

 

소중히 쉬겟다는 선배의 문장을 보고 질투했다.

그러나 선배, 나는 선배를 많이 좋아했어.

 

친구가 필사한 시를 보고 화장실에서 울었다.

훈련소였고, 어두워지고 있었다. 우린 자동차 백미러를 부수고 다녔지. 하숙방 벽에 깨진 거울들을 전시했다. 우리를 지켜보던 거울들. 깨진 금들.

 

신은 나를 멸하려고 언어를 배우게 했다고,

그런 같은,

 

너와 함께 유럽에 가기로 했는데, 우리는 너무 바빴다.

뒤집힌 옷들이 구석에 박혀 있었다.

계속 나와 연인으로 남고 싶다면 슬픈 얘기를 해줘.

루브로박물관은 가보고 싶었어.

 

언제 어떻게 돼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김은아

 

 

당신의 자장가 / 김은아

 

어둡다. 팔을 가슴에 엑스자로 모으고 반대편 팔뚝을 쓰다듬는다. 천장에 등이 달려 있지만 초여름의 햇살에 익숙했던 눈은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여자는 깊은 우물 같은 암흑에 눈을 감는다. 여자의 전체가 사라진다. 균형감마저 잃어버린 여자는 제자리에서 발짝도 움직일 없다. 다시 눈을 뜬다. 암순응이 시작되자 흑백의 모노톤 공간에 먹물처럼 섬세한 농담의 변화가 나타난다. 움집의 벽과 천장에 가면과 , 방패, 기타 전리품들이 수묵 같은 담채의 풍경으로 있다. 섬세하고 깊은 사이로 채도 낮은 사진처럼 가지의 엷은 색이 도드라져 보인다. 무언가 여자를 노려본다. 뒷걸음질 치다 중심을 잃어 넘어진다. 심장 소리가 북소리처럼 커진다.

 

여자가 사육사로 일하는 놀이동산 사파리 입구에아프리카 빌리지 설치하고 있다. 여름방학을 겨냥한 이벤트다. 어제 저녁 퇴근하는 길에 사파리 관리인이 여자를 불러 세웠다. 새로 것들 한번 구경해 봐요. 정말 무시무시하게 생긴 놈이에요. 여자는 빌리지 입구에 붙어 있는 사진을 보았다. 황갈색 칼라하리에 랜드로버가 있고 앞에 사냥총을 사파리 관리인과 아프리카 원주민이 있었다. 발치쯤 고개를 힘없이 떨군 임팔라가 쓰러져 있었다. 임팔라의 꺼져가는 눈빛이 사진 밖의 여자를 향했다.